오늘역사 10월 15일 잭 리퍼 지옥의 편지 & 미인 스파이 마타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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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

버질이 태어났고 잭 리퍼가 지옥으로부터 편지를 보냈으며 마타 하리가 처형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르만 괴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기원전 70년 버질 탄생

푸블리우스 웨르길리우스 마로, 영어명으로는 버질이라 불리고 있는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70년 10월 15일에 태어났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으로 오비디우스, 호라티우스와 함께 역대 최고의 라틴문학가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고 많은 작품 중 문체에 있어 각각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세 걸작 '귀족적인 아이네이스', '서민적인 목가', '중간적인 농경 시'는 라틴문학의 본질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이 죽으면 모든 사본을 파괴하라고 명령했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한 로마의 황제 아구스투스가 이를 수락하지 않아 버질의 작품들이 후세에도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88년 잭 리퍼가 지옥에서 편지를 보내다.

1888년 10월 15일은 영국의 연쇄살인범 일명 살인마 잭이 지옥에서 편지를 보낸 날입니다.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의 윤락가 화이트채플에서 최소 5명의 매춘부들을 갈기갈기 찢어 살해한 연쇄살인범 잭 리퍼에 대해 한 다큐멘터리는 '죽음의 유령 잭 리퍼, 우리는 그가 누군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며 수백 년 간 그가 누구인지 추측하고 궁금해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잭 더 리퍼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노력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 시대 과학 추리가 크게 발전하기도 했으며, 그가 보낸 한 장의 편지와 함께 동봉된 신장 반쪽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더욱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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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From hell

Mr Lusk

Sor
I send you half the
Kidne I took from one women
prasarved it for you tother pirce
I fried and ate it was very nise I
may send you the bloody knif that
took it out if you only wate a whil
longer.

signed
Catch me when
you Can
Mishter Lusk
번역본

지옥으로부터

러스크씨

내가 한여성으로 부터 꺼낸
신장의 반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나머지 반은 내가 구워먹었는데
아주 맛있었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걸 꺼낼때 사용했던 피묻은 칼도
당신에게 보내드리리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시오
러스크 씨

 

 

 

 

 

1917년 마타 하리의 처형

1917년 10월 15일은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 마타 하리가 파리 외곽에서 총살된 날입니다. 남편과 이혼 후 생계가 막막해진 마타 하리는 자바섬에서 배운 춤과 이국적인 외모로 돈을 벌게되었고 이후 파리로 넘어와 물랑 루즈등을 무대로 선정적인 복장과 선정적인 춤으로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비롯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4개 국어를 소화했으며 이국적인 미모를 자랑했던 마타 하리는 프랑스 상류계에까지 드나들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매춘도 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독일 육군 정보부는 프랑스 상류계에 드나들고 있는 마타 하리에게 접근하게 되었고 스파이로 활동하는 대신 거금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녀가 드나들던 클럽은 프랑스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군사, 외교계 고관 등 고위층이 많아 독일 측에서는 많은 기대를 걸었었지만 실제로 얻은 정보는 프랑스 고위층들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들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중 스파이로서 독일 측의 정보를 빼내 올 목적으로 프랑스가 마타 하리를 이용하기도 했었으나 모든 것이 들통나게 되었고 결국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1917년 10월 15일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1946년 헤르만 괴링 자살

1946년 10월 15일은 나치 독일 2대 부총리 헤르만 괴링이 자살한 날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국방군 공군의 최고사령관이자 항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등을 겸한 헤르만 괴링은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임명하고 법령으로 선포한 제3제국의 공식적인 2인자였습니다. 전설적 전공을 무수히 남긴 루프트바페 창설의 주역으로써 최고 지휘관에 걸맞은 인사 능력과 조직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했던 헤르만 괴링은 군사적 능력 외에도 경제 행정 등 관료로서의 수완도 상당했으며 경제 개발 4개년 계획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독일의 만성 실업 해결 및 초기 군수경제 체제 설립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늘어난 욕심과 자만심, 부정부패와 과시욕 때문에 점점 신임을 잃어가게 되었고 스페인 내전에서의 양다리, 영국 본토 항공전 패배, 병력 낭비, 공중 보급 실패 등 을 겪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명성마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전쟁 말기 다른 나치 핵심 인사들과는 달리 히틀러와 함께 자살하지 않고 미군에 항복한 헤르만 괴링은 전쟁범죄자로서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서게 되었으며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괴링은 군인의 전통적인 사형 방식인 총살형을 집행해주기를 바랬지만 법원이 교수형을 내려 결국 집행 하루 전날 몰래 입수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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